제주도와 관련된 해병대 전투사 서울하면 도솔산 경인지구 등이 있듯이제주도와 관련된 전투사나 해병대와 연관된 사건이
서울하면 도솔산 경인지구 등이 있듯이제주도와 관련된 전투사나 해병대와 연관된 사건이 있을까요
도솔산 지구 전투(’51. 6. 2∼6. 20)
▲ 전 황
• 작전 지역 : 강원도 양구 도솔산 일대
• 참가 부대
- 적군 : 북한군 제12사단
- 아군 : 해병 제1연대(대령 김대식)
국군과 유엔군이 1951년 5월 춘계 공세를 격퇴한 직후‚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 남서쪽에 있는 전략 요충지 도솔산(▲1‚148)을 확보하기 위하여‚ 제1단계 작전(1951. 6. 4 ∼ 6. 12)시 공격 목표 ∼1’에서 목표 ‘16’까지 점령한 뒤 캔사스선으로 진출하였고‚ 제2단계 작전(1951. 6. 13 ∼ 6. 24)시 공격 목표 ‘17’에서 목표 ‘24’까지 점령하고 버지선까지 진출하여‚ 도솔산과 대우산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산악지역에 배치된 북괴군 제5군단 제12사단과 제32사단의 정예부대를 치열한 공방전과 무수한 희생 끝에 격퇴하고 도솔산을 탈환함으로써 ‘무적 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전투이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이승만 대통령이 도솔산을 방문하여 ‘무적 해병대’라 칭하면서‚ ‘무적 해병’ 휘호를 하사하였고‚ 1951. 8. 19 제1연대에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
현대 전쟁사에서..
통신으로 인해서승리한 전투나 통신의 활약으로 승리한 전쟁 사례
6·25전쟁 도솔산 전투서 인민군 혼란 빠뜨린 '비밀 병기'
사례 1
제주 출신 통신병이 제주방언으로 교신…북한군 도청당해도 내용 파악 어려워
“글로 죽 가당 보믄 큰큰헌 소낭이 나옵니다게. 그듸서 노(ㄴ + 아래아 ㆍ)단펜으로 돌아상 돌으멍갑서"(그리로 죽 가다가 보면 커다란 소나무가 나옵니다. 거기서 오른편으로 돌아서서 달려가십시오)
"알아수다. 온 덴 헌 건 어떵 됨수과?"(알겠습니다. 지원 온다고 한 것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6월 탄환이 빗발치는 치열한 전투에서 난데없이 제주도 방언이 무선 교신을 타고 오갔다.
무적해병'의 신화를 창조한 중부전선 강원도 도솔산 고지 쟁탈전에서다.
도솔산 지구에서 펼쳐진 이 전투에서 해병대는 적 2개 사단을 격퇴하고 교착상태에 빠진 우군 전선의 활로를 개척했다.
한국전쟁의 판도를 바꾼 도솔산 전투에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밀 작전'이 있었다.
연대와 대대 등 각 통신병을 제주사람으로 두고 제주어로 교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제주 사투리를 다른 지역 출신의 아군도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니 인민군이 교신을 몰래 엿들어 봤자 뜻을 모르기 때문에 안심하고 교신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는 코앞에 있는 인민군과 육탄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전투 중 무전기를 적에게 빼앗기는 일로 우리 해병의 작전상의 비밀 유지가 어렵게 돼 장교들의 고민이 많았다.
당시 대대장이던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은 2008년 3월 국방일보 기고문에서 "몇 대의 무전기를 빼앗겼다고 해서 연대 전체의 통신기를 다 바꿀 수 없는 노릇이었다"며 "우리의 통신 내용을 적이 훤히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걱정이 큰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산등성이에 적의 관측소로 보이는 수상한 하얀색 건물을 전투기로 폭파해달라고 미국 해병대에 무전을 쳤다가 하얀 벽이 금세 검게 칠해져 이런 사실을 모르는 전투기가 건물을 찾지 못해 그냥 돌아가 폭격이 실패하는 일도 있었다.
평소 태평양전쟁사를 즐겨 읽었다는 공 전 사령관은 태평양전쟁 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미군이 인디언 '나바호(Navajo)' 족의 언어를 암호로 이용했던 것을 떠올렸다.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미 해병대에 배치된 나바호족 인디언 400여명은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유 언어를 구사하며 전령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제주방언 교신은 당시 공 대대장의 건의로 공식적으로 이뤄졌다. 포대 지원, 병력 이동 사항, 부상병 발생 사항 등 모든 교신이 제주어로 대대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대대로 전달됐다.
당시 해병대의 주축인 해병 3기와 4기생 3천명이 모두 제주사람이어서 제주어로 대화가 가능해 지휘 체계에서 메시지 전달이 수월했다.
3·4기생 대부분은 오현고·한림고·제주농고 등 고등학생 재학생들로 정규 교육을 받아 표준어도 구사할 수 있었고 당시로써는 학력도 높았다. 또 애국심도 남달랐다.
제1연대 1대대 통신병을 한 강용택(86)씨는 "당시에는 제주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많이 진출하지 않았던 데다, TV 등 미디어가 없어서 제주어를 난생처음 듣는 경우가 많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해병대 4기로 도솔산 전투에 참전한 해병대 3·4기 전우회 박영찬 부회장은 "상관의 지시를 잘 못 듣고서 나도 모르게 '무시거랜 해수과?'(뭐라고 하셨습니까?)라고 제주어로 말했다가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하는 상관의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며 웃음 지었다.